첫 번째,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도움은 베풀지 말아야 한다. 모든 공감은 나에게 공감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 자신의 불행과 아픔에 공감하며 나를 함부로 방치하지 않는 것이 타인을 돕는 것보다 먼저여야 한다. 공감이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함께하는 가족을 힘들게 한다면, 이는 결국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공감의 폭력이 된다.
두 번째, 공감이 지나친 동정이 돼서는 안 된다. 상대의 불우한 상황에 공감하며 함께 아파할 때, 그가 처한 어려움을 동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동정심이 지나쳐 ‘그’라는 사람 자체를 동정해서는 안 된다. 사업에 실패한 동료에게 실패를 안타까워하는 위로를 넘어 ‘인생이 불쌍하다’라는 식으로 말한다면 동료는 위안이 아닌 수치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세 번째, 공감의 대가로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분명히 말해야 한다. 내가 잘해준 만큼 나에게 잘해주길 원하는 정서적 호응이나, 내가 힘들 때 내 편이 돼줘야 한다는 바람을 상대에게 솔직히 밝히는 게 좋다.
네 번째, 상대와 다투지 않고 오래가는 관계를 맺고 싶다면 즐거워하는 일보다 먼저 싫어하는 일에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즐겁고 재미있는 일은 잠시 미뤄도 큰 탈이 나지 않지만 싫은 일은 쌓일수록 마음의 병이 되고 고통이 된다. 재미있는 일은 반복할수록 무덤덤해져서 그 대상이 자주 바뀌지만 싫어하는 일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싫어하는 일에 공감하는 것은 큰 다툼 없이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가는 데 도움을 준다. 만약 상대가 싫어하는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싫어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내가 양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 성숙한 공감의 법칙
나는 그때 채연 씨에게 내 이야기를 먼저 들려줘야 했다.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세상만사 이렇게 해결하면 된다고 말하는 대신, 나 역시 당신처럼 힘든 적이 있었다고 말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그 위기를 넘겼는지 어떤 실수를 하고 어떤 후회를 했는지 담담하게 들려줬어야 했다. 그랬다면 채연 씨는 조금 더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상처로 닫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을까.
=> 들어주는 공감의 한계
특정한 분야의 능력만 생각하다 보면 ‘나는 잘하고 그는 못 한다’는 우열을 가리게 된다. 우열은 차이가 아닌 차별을 만든다. 차이는 서로 다른 상태를 말하지만, 차별은 다른 상태가 만들어낸 다른 대우를 말한다. 조금 시야를 넓혀 더 많은 다른 것들을 함께 생각하면 특정한 부분의 우열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 내가 해내지 못한 부분, 내가 어려워했던 부분을 쉽게 해내는 상대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괜찮은 삶을 살고 있었는지 알게 해 준다.
=> 국방일보를 읽다가 이렇게 적혀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톨스토이는 도박중독자였고, 루소는 자식들을 고아원에 맡기는 등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고, 에디슨은 돈에 집착하고 근로자에게 가혹했다고 한다. 이런 위인들 조차 자기의 분야에서는 정점이지만, 다른 부분에서의 허점이 있다는 글을 보고 위의 책 내용에 대하여 더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자주 혼동하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타인에 대한 배려로 구분된다.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 뒤에 나에게도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은 개인주의다. 하지만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 내가 전부라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은 이기주의다. 관계를 맺을 때 개인주의적인 모습은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이기적인 모습은 혐오스러워 보일 때가 많다. 거절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힘들게 하는 거절은 대부분 이기적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오직 자신의 안위와 이익만 생각하는 모습은 관계를 망치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
=>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의 차별점
자기 삶에 만족하는 마음은 무례한 사람을 무탄트처럼 보이게 한다. 상대를 무탄트로 생각하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관대해지고 유연해진다. 마음이 유연하게 된다는 것은 비유하면 물 같은 액체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액체가 되면 마음속에서 딱딱하게 굳어진 부정의 감정 역시 부드러운 물처럼 변하게 된다.
언젠가 나를 모욕하는 상대에게 분노를 느꼈을 때 그의 등 뒤로 끝없이 펼쳐진 파란 하늘을 보며 다툼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그가 나를 모욕해도 변하는 것은 없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나는 저 사람의 말에 동요해야 하는가? 상대의 말과 표정에 집중되었던 마음이 상대를 벗어나니, 거대한 바위에 눌린 것처럼 답답하고 아팠던 마음이 고요한 호수에 떠 있는 것처럼 평온해졌다. 평온해진 마음은 상대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변함없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을 흔들리지 않게 해 주었다.
=> 무례함에 대처하는 자세. 유연한 마음. 호주의 참사랑 부족은 자신들을 야만적이라고 무례하게 대하는 문명인들에게 화내지 않고 '무탄트'라고 부른다. '무탄트'는 돌연변이라는 뜻으로 오히려 부족민들에게는 문명인들이 자연을 거스르며 사는 불쌍한 돌연변이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런 판단은 내가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무심히 마주친 눈빛에서, 퉁명스러운 말투에서 상대에게 전달되며 의도하지 않은 모욕감을 주게 된다. 겉모습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것은 내면에 각인된 ‘패턴화 본능’ 때문이다.
무례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이런 본능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본능적인 첫인상에 너무 의지하지 말고 상대에 대해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신중함을 습관처럼 가져야 한다. 편견에 따라 상대를 조급히 평가해서는 안 된다. 무례함에 맞서는 방법은 혹시 내가 겉모습만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완성된다.
=>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 내리는 것의 무례함
숀 교수가 윌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 건 잘못이 없다는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누군가를 탓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윌이 후회하고 괴로워하는 일들이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일어났다는 점을 말해주기 위해서다.
만약 지인이 내 집에 놀러 와 선반에 놓인 소중한 찻잔을 실수로 깨뜨렸다고 하자. 지인은 미안해하며 찻잔 값을 물어주려 할 것이다. 그런데 이때 내가 ‘선반에 놓인 찻잔이 떨어진 건, 선반 위에 위험하게 찻잔을 놓아둔 내 탓’이라고 하며 지인을 용서한다면 어떻게 될까? 오히려 지인이 다치지 않았는지 걱정하며 지인에게 미안해한다면 찻잔 값은커녕, 제대로 사과조차 받지 못한 자신이 바보 같다고 느껴질까? 물론 누군가는 그런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지인을 용서했다는 기분 좋은 마음이 커져서 찻잔 값 정도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붉은색 잉크 한 방울을 컵 안의 물에 떨어뜨리면 물은 붉게 물들지만, 바다에 넣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바다같이 넓은 마음은 고통이라는 작은 방울을 사라지게 해 준다.
=> '내 탓이야'와 '네 탓이 아니야'의 조화.
마음의 문제를 푸는 해결책은 내가 평소 반복하던 습관의 반대편에 있는 경우가 많다. 습관처럼 거만한 사람은 겸손함에서 답을 찾아야 하고 소심한 사람은 대범함에서, 무례한 사람은 친절함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이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분노와 미움이 식어서 ‘용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분노와 미움이 식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치 장발장이 훔친 은촛대를 자신이 준 것이라고 말했던 미리엘 신부처럼 조건 없이 용서하겠다는 마음을 먼저 가진 뒤에 상대의 잘못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내가 일으킨 분노에 잠식되지 않고 상대의 본심을 바라볼 수 있으며 진심으로 상대를 용서할 수 있게 된다.
=> 이 책에서 "미움과 분노로부터 시작된 마음의 고통은 그런 감정의 반대편에 있는 용서와 화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라고 한다. 또한 용서하겠다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분노와 미움이 식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거칠고 투박하고 이기적인 모습, 그런 모습을 다른 누구도 아닌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온 편한 상대에게 주로 보여준다는 것은 관계의 역설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내가 싫은 건 타인에게도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대화한다면 어느새 사려 깊은 대화를 나눌 줄 아는 좋은 파트너가 돼 있을 것이다.
편안함도 마약 같은 강한 중독성을 지니고 있다. 편안할수록 나를 불편하게 하는 모든 제약에 거부감을 느끼며 내 마음대로 하려는 욕구가 강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슬아슬하게 관계를 유지시켜주던 마지막 예절의 끈마저 풀어버리며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
지우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만약 지우 씨가 현우 씨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하지 않고 정중한 설득의 과정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현우 씨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전에 지우 씨의 생각과 의견을 먼저 경청하고 헤아리는 불편한 과정이 있었다면 관계는 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둘은 어려운 역경을 함께 극복해낸 세상에 둘도 없는 골동품의 관계가 되지 않았을까.
=> 역지사지의 마음 및 편안한 관계라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와닿았다.
우리가 품고 있는 욕심에는 크게 좋은 욕심과 나쁜 욕심,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좋은 욕심은 상대의 장점을 배워가며 나 또한 그처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성장의 욕심을 말한다. 동시에 상대 역시 나를 통해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런 욕심은 관계를 즐겁게 만들어준다. 그가 나와 함께해준 덕분에 이전에는 시도하지 못했던 용기를 내며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긍정의 에너지를 뿜어내게 한다.
나쁜 욕심은 나에게 부족한 것을 상대에게 가져와 채우려고 하는 마음이다. 경제적 곤란을 해결하기 위해 상대를 맡겨놓은 지갑처럼 사용하거나 상대방의 꿈과 희망을 내 멋대로 조정하거나, 상대의 권력이나 유명세를 이용해 나를 돋보이게 하려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상대가 하기 싫어하는 것을 집요하게 요구해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를 조종하기도 한다.
=> 좋은 욕심과 나쁜 욕심
낯선 환경에서 낯선 타인에게 적응한다는 것은 그가 무엇을 얻으려 하고 지키려 하며 버리려 하는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만 상대가 얻으려는 것을 통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게 되고, 지키려는 것을 통해 내게서 무엇을 빼앗기지 않으려 하는지를 알게 되며, 버리려는 것을 통해 내게 무엇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관계의 문제를 푸는 데 정답은 없다. 똑같은 공손함과 조심스러움으로 상대에게 다가가도 누군가와는 대화로 해결점을 찾게 되고 누군가와는 길거리 싸움을 하게 된다.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직접 겪어야만 알 수 있다. 그 경험을 통해 나만의 코핑 메커니즘을 최적화시켜나가는 것이 낯선 관계에 적응하는 시간과 마음의 상처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 관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필요한 경험, 코핑 메커니즘.
"코핑 메커니즘은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내면의 대응 전략을 말한다. 지금까지 겪어온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스트레스 상황이 벌어지면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만들어진 일종의 나만의 방어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얼마나 잘해줄지를 생각하기에 앞서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부터 공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애정을 쏟았던 모든 순간이 한꺼번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좋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나에게 득이 될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 그가 어떤 의미를 갖는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다. 그가 내 곁에 있는 의미를 알 수 있을 때, 관계의 고통과 불행은 전혀 다른 긍정의 울림을 갖게 된다.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이 바로 우리가 길러야 할 관계의 안목이다.
=>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인지를 생각하라.
후회 없는 관계는 내가 먼저 상대의 잘못을 용서하는 용기를 낼 때 만들어질 수 있다. 용서할 수 있어야 미움 없이 상대에게 공감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어야 상대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는 맑은 눈을 갖게 된다. 탁월한 안목이란 맑은 눈을 갖는 것이다. 그런 안목으로 맺어진 관계는 여러분의 삶을 좀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해 줄 향기로운 인연의 꽃이 될 것이다.
=> 후회 없는 관계를 위한 용기.
그러니 현실 체질의 상대에게 나를 위해 좀 더 공감해달라고 요구하거나 감성 체질의 상대에게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을 말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좋은 소통 방식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나를 상대에게 맞추려고 필요 이상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없다. 서로에게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은 되도록 하지 말고 나와 다른 상대의 체질을 통해 생각하지 못했던 독특한 관점을 경험한다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체질이 달라도 서로를 탓하지 않고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그 어려운 일을 쉽게 생각하며 상대에게 자꾸 변화를 강요하게 될 때 관계는 조금씩 불편해지며 언젠가는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있는 그대로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것이 가장 행복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평범한 진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대에게서 해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내 체질 안에서 상대를 포용할 수 있는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나도 상대에게 당당히 있는 그대로의 욕심과 태도를 사랑해달라고 말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어쩌면 둘은 점점 사이가 멀어지다가 더는 만나지 않는 사이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또한 나쁘지 않은 이별이다. 상대의 마음속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이제는 서로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타인에게 공감한다는 건 꼭 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는 다투지 않고 평화롭게 헤어질 수 있는 것도 상대를 온전히 공감할 때 가능한 일이다. 미워하거나 탓하는 마음 없이, 각자의 길에서 빛나기를 바라면서, 세아 씨는 세아 씨의 길을, 민지 씨는 민지 씨의 길을 떠나는 것도 서로를 존중해주는 성숙한 공감의 마음이다.
부당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내 의견을 드러내는 용기는 쉽게 낼 수 있는 마음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려는 시도조차 멈춰서는 안 된다. 두려운 마음이 속 깊은 사람과의 인연을 막아서는 장애물이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만큼 마음 그릇이 큰 사람은 마음의 소리를 밖으로 낼 때 만날 수 있는 용기의 선물이기도 하다.
가장 슬기로운 방법은 상대에게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를 원망하는 마음 대신 그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용서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고 싶다고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분노의 마음은 시야를 좁게 만든다. 공격할 대상을 만들고 과녁에 활을 쏘듯 상대를 향해 분노를 쏟아내게 만든다. 상대에 대한 시야가 좁아질수록, 잘못한 것 하나하나를 따지고 파고들며 잘못한 내용이 아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미워하게 만든다. ‘이런 실수나 하는 멍청한 놈, 피해를 주는 나쁜 놈’이라 나무라며 상대를 형편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반면에 용서의 마음은 시야를 넓혀준다. 시야가 넓어질수록, 사람이 아닌 잘못한 내용을 지적하며 ‘잘못한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닌, 지금을 만들어낸 길고 긴 마음의 역사를 통찰할 수 있게 해준다.
관계는 유구한 역사를 담고 있는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과정이다. 바로 지금이 아닌, 지금을 있게 한 긴 시간 속에서, 그를 있게 한 관계의 역사를 볼 때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일어날 수 있다.
=> 인간은 각자만의 역사가 있다.
정의감을 드러낼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내가 내세운 정의가 나만의 정의는 아닌지, 내 행동으로 억울하게 피해 보는 사람은 없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혹시 나는 그와 같이 행동한 적이 없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만약 내가 그와 다름없다면, 응징에 앞서 반성부터 해야 한다. 내 잘못된 행동이 원인이 되어 이런 인연을 불러왔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성찰은 경멸과 분노가 아닌 공감과 연민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
=> 정의감 드러낼때, 나도 그랬었다면 "나도 전에 그랬었어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붙이며 반성 했다는 의미 내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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